[르포] "번역기 쓰고 영어로 된 책자까지 만들었죠"...삼성중공업 현장 외국인만 1500여 명
[르포] "번역기 쓰고 영어로 된 책자까지 만들었죠"...삼성중공업 현장 외국인만 1500여 명
  • 배석원 기자
  • 승인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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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사업장 근무자 2만여 명 가운데 외국인만 1500여 명
"번역기 쓰고 영여 책자까지"...첫 직영 외국인 정규직 채용
3분기 연속 영업익 흑자...'노 저을 사람 찾는 건 회사 숙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전경 [사진=배석원 기자]

지난 10일 오후 5시 조금 넘은 시간. 수백 여 대의 오토바이와 자전거에 올라탄 일단의 근로자들이 사업장 정문 밖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투박해 보이는 작업화, 그 발목에는 하나같이 '무재해' 밴드가 둘러져 있습니다. 퇴근길에도 작업 중인 것처럼 얼굴에 두건을 두른 이들도 보입니다. 상의는 그레이색 점퍼. 왼쪽 가슴팍에는 '삼성중공업'이란 글자가 선명합니다. 오른쪽 가슴팍에 이름과 회사명을 더한 이들은 협력사 직원입니다.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하루에 두 번, 매일 오전 7시와 오후 5시에 펼쳐지는 모습입니다. 이 시간 때면 삼성중공업 거제사업장 진입로는 조선소 출퇴근 인파로 가득 채워집니다. 수많은 오토바이 무리가 만드는 출퇴근 풍경은 이곳에선 30년 이상 된 일상입니다. 수 백대의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조선소 앞 장평오거리. 하루를 시작하는 ‘삼성중공업 맨’들이 하나가 되는 길목이자 고된 일과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지난 10일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근무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하고 있다.
[사진=배석원 기자]

"일감은 몰리는데 사람이 없어 힘들다"는 조선소 현장의 목소리를 더 가깝게 듣고, 보기 위해 이날 현장을 찾았습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삼성중공업 조선소 근무자의 퇴근 길은 밤늦도록 이어졌습니다. 작업자들이 가장 많이 빠져나가는 오후 5시 이후에도 사업장에선 계속 사람들이 걸어 나왔습니다. 그 중에는 외국인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파키스탄에서 왔다는 A씨.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일하는지 묻는 질문에 그는 "6시간 정도 일하고 퇴근한다"고 짧게 답한 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 동료들과 횡단보도를 건너갔습니다.

삼성중공업 조선소는 주말에도 쉼 없이 돌아갔습니다. "삐익~삐익' 거리는 기계 움직이는 소리와 철판이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크레인이 작동되는 모습은 토요일에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조선 산업이 호황기를 맞으면서 밀려든 작업량이 많다는 뜻입니다. 납기를 지키기 위해 평일 밤낮, 주말 가리지 않고 돌아가는 곳이 바로 조선소의 현재, 생생한 삶의 현장 모습입니다.

지난 10일 삼성중공업 거제사업장 정문 모습. 일과를 마치고 근무자들이 퇴근하고 있다.
[사진=배석원 기자]

◆ 거제사업장 근무자 2만여 명 가운데 외국인만 1500여 명
기자는 삼성중공업 거제사업장 인근에 이틀간 머물며 현장을 살펴봤습니다. 조선소는 직원 외에 외부인에 대한 출입 보안이 철저했습니다. 삼성중공업은 몇 년 째 일반인 견학 등 조선소 출입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기업이 보수적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그만큼 보안이 까다로운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회사 자산을 무단으로 반출하려던 사람을 잡아내기도 했습니다. 지난 6월 20일 저녁 6시 30분경. 삼성중공업 거제사업장 B단지로 나가던 타사 직원 가방을 검문 과정에서 구리선을 은닉한 것이 적발돼 경찰이 현행범으로 입건하고 회사는 해당 직원을 퇴사 처리한 일이 있던 겁니다. 삼성중공업은 이후 회수한 잔여 케이블은 회사 자산으로 매각했다며 근무자들에게 '무단 반출 금지'를 공지하고 있었습니다.

11일 토요일 점심시간. 주말에도 조선소 작업이 이뤄지다 보니 인근 식당도 평일처럼 분주했습니다. 삼성중공업 근무복을 입은 무리를 따라 그들이 들어가는 식당에 들어가 봤습니다. 식당은 만석이었습니다. 자리를 채운 것은 모두 삼성중공업 조선소 사람들. 식당 직원 B씨는 "주말에도 평일처럼 사람이 많고 일요일에는 쉰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옆자리에는 외국인과 식사하는 직원도 보였습니다. 

조선소들이 극심한 인력난을 겪으면서 현재 외국인 인력을 대거 수용하고 있는 상황. 삼성중공업도 예외는 아닙니다. 협력사를 포함한 삼성중공업 조선소 근무 직원은 약 2만여 명 이상. 이 중 외국인 직원 수는 1500여 명에 달합니다. 이 수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일할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삼성중공업도 올해부터 첫 외국인 본사 직원을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설계 분야에서 정규직으로 외국인을 채용한 적은 있었지만 생산직 직군을 정규직으로 뽑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습니다. 채용 인원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인도네시아인을 뽑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회사는 외국인 인력의 추가 확보도 검토한다는 입장입니다.

최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인근에 들어선 외국 식료품점들
[사진=배석원 기자] 

◆ "번역기 쓰고 영여 책자까지"...첫 직영 외국인 정규직 채용 
외국인 근로자가 채워지면서 인근 동네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같은 날 찾은 조선소 인근의 한 베트남식료품점. 이 가게에는 베트남 출신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어가 유창한 그는 "이 매장에 베트남 국적 조선소 직원분들이 많이 온다"고 말했습니다. 이 매장이 문을 연 건 지난 10월 중순이었습니다. 최근에 문을 연 가게는 또 있었습니다. 영문 상호의 또 다른 매장. 이 매장에선 빵과 파스타면 등 식료품 등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인 직원 C씨는 "지난 6월에 가게 문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조선소 현장 소통은 아직 어려움이 많습니다. 가장 먼저 겪는 것은 언어 문제입니다. 외국인 인력이 많아지면서 생긴 겁니다. 조선소 인근에서 만난 한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외국인 직원들과 소통할 때 번역기를 쓰기도 하고 그나마 한국어 유창한 직원에게 전달해 그 직원이 통역해주는 형태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현장에는 외국인 직원을 위해 영어로 된 업무 책자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은 "외국인과 작업을 놓고 소통하는 데 무리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중공업 조선소 직원들은 대체로 사람이 없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구체적 설명은 꺼려했습니다. 과거 다른 조선소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던 E씨는 "족장, 치부(족장(발판) 치부사, 용접공 등 전반적으로 조선소 내부에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외국인 인력이 들어와도 숙련공처럼 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했습니다.

삼성중공업 거제사업장 전경. 조선소 암벽에 건조 중인 LNG운반선이 세워져 있다.
[사진=배석원 기자]

◆ 3분기 연속 영업이익 흑자...'노 저을 사람 찾는 건 회사 숙제'
삼섬중공업 거제조선소 작업장은 모든 도크가 현재 수주 받은 LNG운반선과 컨테이너선 건조 등에 쓰이고 있습니다. 조선소 암벽까지 LNG운반선이 채워져 건조 중입니다. 삼성중공업은 연내 추가 FLNG선박 수주도 노리고 있습니다. 밀려드는 일감에 매출과 영업이익도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삼성중공업 3분기 매출은 2조255억원, 영업이익은 758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4.7%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3개 분기 연속 흑자전환을 이어갔습니다

삼성중공업은 앞서 올 1분기 영업적자를 털고 흑자전환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현재 코로나19 시기였던 2021년부터 수주했던 선박 수주 매출이 반영되기 시작했고 올해는 영업이익 가이던스를 2000억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수주 성과와 별개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인력 확보는 앞으로도 회사가 풀어가야할 숙제입니다.

한편 삼성중공업은 현재 정규 생산직 채용 시 우대하는 158기 직업기술생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모집분야는 용접과 선체조립, 멤브레인용접 등으로 서류 접수는 이달 19일까지입니다. 이후 전형을 거쳐 이달 23일 최종 합격자를 선발할 예정입니다. 성과급과 격려금 외에도 조선업 청년 채용 장려금과 조선업 정착지원금 등도 지원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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